참고 - 1974년 영화 <일자,나치 친위대의 색녀>는,
나치 강제수용소 여간수들의 각종 만행, 특히 성적 난잡함을 그린 영화다.
이르마 그레제 (1923년 10월 7일 – 1945년 12월 13일)
이르마 그레제는 1923년 10월 7일 브레켄에서 태어나, 1945년 12월 13일 하멜른 감옥에서 사망했고, 그녀는 레벤스브룩,아우슈비크,베르겐-벨젠 등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친위대 여간수 였다. 그녀의 특히 잔인하고, 수감자에 대해 변태적인 행동 때문에, 베르겐-벨젠의 « 하이에나 »라는 별명이 있었던, 그녀는 나치 여성전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들 중 한명이다.
1923년, 독일 농부였던, 알프레드 와 베르타 그레제 는 멕켈부르크의 파세월크 부근의 촌락인, 브레켄에서 딸을 출산한다. 1936년, 베르타 가 자살한다. 1938년, 당시 15세 였던 ,이르마 는 학교에서 쫓겨났고, 그녀는 이상한 행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 그녀는 말이 없었고, 당시에 히틀러 소년단의 산하에 있던, 독일 소녀 동맹에 매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8년-1942년, 그녀는 각종 직업들을 전전한다 : 그녀는 농장에서 일했고, 매장 점원일을 하다가, 결국 나치 친위대 병원에서 보조 간호사로 일하게 된다. 정식 간호사가 될 수 없었던 그녀는, 친위대에 가입했고, 레벤스브룩의 친위대 여간수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를 극구 말렸다고 한다.
1942년 여름, 그녀는 친위대에 가입한다. 1943년 3월, 이르마는 교육을 마치고, 여간수로 아우슈비츠에 파견된다 ; 그녀는 승진을 거듭, 그해 가을에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인 비르케나우의 C캠프의 여간수 장에 임명된다. 그녀는 역설적으로 <아우슈비츠의 금발 천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고, 그녀는 수용소에서 가장 막강한 여성 중의 한 명이 된다 : 그녀는 자신의 휘하에 3 만명의 수감인을 두고, 그 중 만8천 명은 여성이었다. 1945년 1월, 아우슈비츠 가 소개되면서, 그녀는 레벤스브룩 수용소에 잠시 있다가, 몇 달 후,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일하게 된다. 바로 이곳에서, 그녀는 1945년 3월까지 노동서비스국 국장 직을 수행했고, 4월 17일에 다른 친위대 간부들과 함께 영국군에게 체포되었다.
그녀는 나치의 게르만 여성의 인종범주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 장신에, 금발, 강인한 성격 , 심지어 그녀는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레제는 벨젠 재판에서 전범으로 기소된 44명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1945년 9월 17일부터 1945년 11월 17일까지 재판을 받았고,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증인들은 가혹한 대우 와 수감인에 대한 살인 혐의로 그녀를 고발했다. 이는 1929년의 제네바 협정 위반이었다. 그녀는 대량 총살형에 참여했고, 권총에 의한 개인적 처형을 했고, 채찍질을 했으며, 가스실로 보낼 인원들을 선별했고, 성적 수치심을 자극했고, 개들이 수감인들을 물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아무 이유없이 수형인들을 죽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고, 그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꼈었노라고 자백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방에서는, 사람의 피부로 만든, 전등갓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유죄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독일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반사회분자들을 처단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였다» 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레제 와 11명의 다른 범죄인들이 아우슈비츠와 벨젠 수용소에서, 전쟁범죄를 자행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사형판결을 받았다. 그녀들 중에는, 요한나 보르만 과 엘리자베스 폴켄라스도 표함되어 있었다. 1945년 12월 13일. 이르마는 영국 당국에 의해 교수형을 당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빨리!» 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