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미국 시민권 시험이 갈수록 어려워 질 거라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필기시험은 물론이요, 인터뷰도 간단한 미국상식 수준을 넘어 미국정치 전반에 따른 문제로 강화되었다고 한다.
미리 시민권을 따놓은 사람들은 그 기사를 읽으면서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을 것이고 아직까지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사람은 불안하고 걱정이 되겠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시민권이 있는 사람들인데 시민권 취득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극과 극이다.
시민권 따는 것이 운전면허증 따는 것보다 더 쉽더라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또 어떤 사람은 시민권 시험에서 여섯 번이나 떨어졌다가 일곱 번째에 가서 가까스로 붙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의 시민권 취득에 대한 무용담은 밤을 새워가며 들어도 못다 들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시민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꼭 회자되는 사람이 있는데 큰 다이아 반지를 끼고 갔다가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다.
그녀는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떨어질까봐 인터뷰 시험 예상문제를 한 달 동안이나 달달 외어서 인터뷰를 하러 갔단다. 그랬는데 시험관은 자기가 달달 외어간 문제는 하나도 묻지않고 손가락에 끼어진 반지를 쓱 보더니 '나는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지고 있다' 는 문장을 써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잔뜩 긴장하고 불안한 중에도 '나는' 과 '큰', 그리고 '가지고 있다' 까지는 썼는데 그 놈의 '다이아몬드' 라는 단어가 왜 그리 생각이 안나던지 10여분을 쩔쩔 매다가 시험에 떨어졌단다.

또 어떤 노인 역시 인터뷰 시험에 대비,간단한 미국역사와 상식문제를 밤낮없이 공부해 시험을 치러 갔단다.
꿈도 시민권 인터뷰 시험에 대해서만 꿀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당일 아침에도 다시 예습을 한 후 ' 이 정도면!' 하고 자신만만하게 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근엄한 시험관 앞에 딱 서니까 그동안 공부했던 것이 순식간에 다 날아 가 버리고 그저 머리가 하얗게 비더란다. 그래서 '미국의 수도가 어디냐' 는 시험관의 질문에 '빌 클린턴' 이라는 뜬금없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당시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었다).
몇 달을 공부했던 것도 소용없이 그 노인은 물론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고 그는 얼마나 억울했던지 가슴을 치면서 집에 돌아 와서 사흘동안 식음을 전폐했다던가.

나도 시민권 인터뷰중 그런 바보같은 경험을 했었다.
시험관의 첫 번째 질문이 미국 국기의 색깔이 몇 가지냐 하는 거였는데 사람이 긴장하고 당황하면 자기 이름도 까먹는다더니 내가 그 짝이었다.
조금전에도 건물 앞에 세워진 게양대에서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미국국기를 보고 들어왔으면서도 미국국기의 색이 몇 가지였는지 도대체 죽어라고 생각이 안나는 거였다.
나는 사색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이고, 영락없이 떨어졌구나. 미국 시민이 되겠다고 찾아온 사람이 미국국기 색깔이 몇 개인지도 모르니 시험관이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그러나 시험관은 너무나 자애로왔다.
쩔쩔매는 나를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볼펜으로 내 뒷 쪽을 가르켰다.
돌아 보니, 맙소사!
구석에 미국국기가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그 후 시험관이 몇 가지를 더 물어 보았는데 내 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제대로 대답을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제대로 해 낸 것은 시험관이 불러주는 문장을 쓴 것 밖에 없다.
그런데도 나는 시민권을 받았다.
시민권은 물건너 갔구나,하고 포기하고 있던 나는 '패스했다' 는 시험관의 말에 너무 좋아서 환호성을 지르며 천정까지 펄쩍 뛰어 올랐다.

나중에 들으니 대기실에 앉아 있던 남편에까지 내 환호성이 들리더란다.

시험관의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못했는데 시민권을 받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다. 그런데 사람들 말에 의하면 아마도 내가 미국 온 첫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쭉 일을 하면서 세금을 착실하게 낸 것 때문일 거란다.
미국역사를 달달 꿰어서 시험관의 질문에 막힘없이 척척 대답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금을 착실하게 냈다는 것은 우선 미국시민이 지켜야 할 첫 번 째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시민권을 준다는 것이다.
글쎄,그말이 맞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매달 월급명세서에 뭉텅뭉텅 잘려 나가는 세금도 모자라 해 마다 몇 천 불 씩 추가로 내어야 하는 세금 때문에 속이 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세금을 잘 낸 덕분에 별탈없이 시민권을 딸 수 있었다니 참으로 다행스런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신문에서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미국 군대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최근들어 미국시민권을 취득하기가 점점 힘들어지자 쉬운 방법의 하나로 미국군대에 입대해 전쟁터(이라크)로 나간다는 것이다.
미국방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시민권을 목표로 미국군대에 입대한 영주권자의 수가 2만 7천여명이라고 한다.
시민권을 취득키 위해 꿈 같은 나이의 젊은이들이 목숨까지 거는데 비해 나는 가만히 앉아서 너무 쉬운 방법으로 시민권을 따지 않았나 하고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든다.

이민 17년의 주부가 쓴 미국 생활 이야기가 http://kyesook.com 에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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