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나는 휴가를 받았다.

늦잠도 자고 그동안 써 놓은 글을 웹 사이트에 올리는 작업도 하면서 집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2주를 느긋하게 보냈다.

휴가 받아 살판났다고 전자우편으로 전한 내 근황에 J씨가 답장을 보내 왔다.

"어떻게 하면 휴가라는 게 다 있습니까? 나는 미국온 이래 단 하루도 마음놓고 쉬어 본 일이 없는데..."

주유소가 딸린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가게문을 매일 열어야 하는지라 휴가란 말이 자기 사전에 없단다.

자영업을 하는 내 주위사람의 사정도 J씨와 거의 같다. 자기 가게를 가진이래 단 하루도 마음놓고 쉬어 본 적이 없다는데는.

주류사람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은 그래도 사정이 좀 낫다. 일요일 하루는 문을 닫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한국인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 특히 식당이나 마켓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365일 풀가동이다.

근 30년동안 운영하던 한국마켓을 몇 년 전 접은 또 다른 J씨는 말한다.

이렇게 홀가분하고 편할 줄 알았으면 진작 그만두었을 거라고.

J씨는 30년동안 식품점을 하면서 365일 단 하루도, 진짜 단 하루도 쉬어 보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 전역의 상점들이 문을 닫는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새해 첫 날에도 J씨는 문을 열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었단다. 그러던 어느해 추수감사절 오후, 손님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자기도 오랫만에 모인 가족들이랑 식사도 해야 할 것 같아 예정된 시간보다 두어시간 일찍 문을 닫았단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손님들의 비난과 원성이 쏟아졌단다.

"사람들이 그러더군. 명절이라고 일찍 문을 닫다니, 어쭈, 이제 배가 불렀나 봐?"

그 다음부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단다. 손님이 있든 없든.

온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명절날에 혼자 가게문을 열고 앉아 있어야 했던 J씨의 심경이 어땠을까.

식당업을 하는 K씨는 요즘 한 달에 한 번 쉬는 것을 두 번으로 늘려 볼까 생각중이란다.

"어떻게 된 게 노는 날은 더 바빠. 한 달 동안 밀렸던 볼 일 보고 어영구영 하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후딱 지나가 버려. 또 하룻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어디 마음먹고 여행 한 번을 갈 수가 있나. 가까운데라면 당일치기로 갔다올 수 있겠지만 하룻만에 서둘러 갔다 오고나면 다음날 더 피곤할 것 같아서 망설여지고.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휴식이라는 것도 필요한데..."

자기는 과감히 한 달에 두 번 노는 것으로 결단을 내리고 싶은데 부인때문에 망설이고 있단다.

집 페이먼트, 차 페이먼트 등 한 달에 나가야 할 돈이 빈틈없이 꽉 짜여져 있는데 하루를 더 쉬어 버리면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부인이 걱정을 하기 때문이란다.

미국오는 날부터 자그마치 세 군데의 직장에서 10년을 넘게 일하다 건강에 무리가 오고나서야 두 군데로 직장을 줄였다는 C씨 역시 처음엔 걱정이 돼 잠이 다 안오더라고 했다.

"들어오던 수입에서 3분의 1이 줄어드는데 몸은 편해서 좋다만 이러다 집 페이먼트를 못하는 건 아닐까, 혹시 밥이라도 굶게 되지나 않을까 안절부절이 되더구먼.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줄어든 수입가지고도 아쉬운대로 살아지대. 없으면 없는대로 맞춰서 살아지더라니까."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밥은 굶지않고 살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많이 한다.

이민초기엔 너나 할 것없이 궂은 일, 힘든 일 가릴 것 없이 몇 직장을 돌면서 힘들게 고생들을 하지만 어느정도 생활이 안정되고 나면 그렇게 죽을판 살판 일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곳이 미국이란다.

그런데 이민온 날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살펴보면 백이면 백, 집이나 사업에 욕심과 과용을 부린 사람들이란다.

처음엔 다운페이 할 돈을 모으느라, 집을 산 후엔 집에 맞춰 사들인 가구와 전자제품 값 갚아나가느라, 그리고 그 후엔 다락같이 높아진 눈높이에 맞춰 다시 넓혀 간 집값 갚느라 쉴 새 없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내 주위에도 주머니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눈높이만 맞추어 집을 산 후 허덕대는 사람들이 두 서넛 있다.

방이 다섯 개나 되는 이층집에 사는 모씨인데 그는 매년 여름 날 일이 끔찍하다고 했다. 전기세가 무서워 에어컨디션을 마음대로 틀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 넓은 집에 달랑 세 식구가 사는데 낮엔 하루 종일 일하다가 저녁에 들어가서야 잠깐 트는데도 집이 커서인지 전기세가 무시못할 정도라 선풍기로 여름을 난다고 했다.

"에어컨디션 한 번 내 마음대로 못켜는 집의 집값을 갚아나가기 위해 하루 열 몇 시간을 일하는 내가 미쳤지. 집이 아무리 크고 좋으면 뭘 해. 집에 머물 시간이 없는 걸. 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밥 먹고 쓰러져 자기 바쁘지, 비싼 돈 들여 판 수영장에 그동안 딱 두 번 들어가 봤다면 말 다했지......"

내일모레 육십을 바라보는 그는 죽사사자 일만 하다 어느날 운명을 달리하는 주위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고 했다.

"미국온 지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못해 보고 일에만 파묻혀 살았는데 이러다 지금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억울해서 내가 눈이나 제대로 감을란가.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앞만 보고 살아온 내 인생에 잠시 쉼표를 찍고 뒤를 한번 돌아볼 때..."

당신 인생에 쉼표를 찍을 때는 언제인가.
-이민 17년의 주부가 쓴 미국 생활 이야기가 http://kyesook.com 에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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