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고난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는 없을 것이다.  부당한 고난은 더욱 그렇다.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 중에 한 가지를 의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한다.  하나님은 우주적으로 거대하신 분이라고는 믿지만, 그런 거대하신 분이 보잘 것 없는 한 개인인 나에게까지는 사랑을 쏟으실 만한 여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이 많으신 좋은 분으로 믿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능력이 없는 착하디 착한 시골 할머니와 같은 분으로 생각한다.  만일 기독교가 말 한대로 하나님은 사랑과 능력을 동시에 가지고 계신다면, 어떻게 그의 사랑하는 자녀가 고통 당하도록 허용하실 수 있을까?  이것은 마치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는 모순처럼 보이는 역설을 받아드려야 한다.  종교 심리학자 파울러(Fowler)는 어떤 종교의 신앙인이든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동안에 거쳐야 하는 신앙의 단계 중 하나가 '결합적인 신앙'(Conjunctive Faith)이라고 말했다.  이 단계에 들어선 신앙인은 자기 종교의 역설을 받아드리는 단계이다.  자신의 합리적인 사고로는 모순처럼 보이는 종교적 진리를 그대로 받아드릴 수 있는 단계는 최고의 바로 이전 단계이다.  높은 수준의 단계에 이른 신앙인만이 바로 이런 역설을 받아드릴 수 있다는 말이다.  
        
제럴드 싯처는 그의 책 "하나님의 뜻"에서 역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설이란 두 가지 말이 컽으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 보면 동시에 진실인 상태를 말한다.  과학에서 뉴턴의 세계관에는 역설이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현상은 물리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거기에는 상충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시각에는 역설이 허용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가지 실체의 차원에서 기능할 수 있다.  인간 경험의 차원에서는 시간과 질량이 절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는 시간과 질량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모순처럼 보이는 것이 실은 역설일 뿐이다.
        

싯처는 인간의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고난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며 그런 일도 계획을 하신 일도 없다는 입장에서 말할 때 인간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당하는 고난을 자신이 원하시는 뜻대로 사용하신다는 점에서 인간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바로 이런 역설을 볼 수 있다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난은 하나님이 당신의 피조세계에 의도하신 것과 어긋나면서도 역사에 대한 그분의 섭리와 계획에 들어맞는다.  이 역설의 전형적 예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십자가는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하나님의 뜻"살인하지 말지니라"에 대한 무엄한 도전이면서 또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성취다.  끔찍한 불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완전한 정의와 자비의 궁극적 표현이다.
        
우리는 모순처럼 보이는 우리의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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