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건강보험만 있었어도….”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한 재미동포는 얼마 전 기자에게 위암으로 숨진 A(48) 씨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연은 이랬다. 미국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던 그는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로 지냈다. 평소 위장이 좋지 않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종합검진을 했다. 그런데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A 씨는 미국에 들어와서 뒤늦게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그런데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바로 내시경검사를 해서 위암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문제가 있을까 봐 몇 달 기다린 뒤 내시경검사를 했다. 미국에서도 위암 진단이 내려지고 뒤늦게 수술을 했지만 수술시점이 너무 늦어 숨졌다.


그는 왜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던 것일까? 보험료가 비쌌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조건이 다르지만 미국에서 개인 건강보험에 가입하려면 한 달에 대체로 1000달러(약 95만 원)를 내야 한다. 1년이 아니고, 한 달이다.


1년이라면 1만2000달러(약 1140만 원)를 내야 한다는 계산이다. 미국이 한국에 비해 잘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엄청난 돈이다. 실제로 기자도 매년 이 정도 안팎의 건강보험료를 매달 꼬박꼬박 내고 있다.


이 때문에 동포 중에서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건강보험 없이 지내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는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이 4000만 명에 이른다. 미국에서 건강보험 문제는 큰 이슈여서 한때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 힐러리 클린턴 현 상원의원이 건강보험을 개혁하려다 좌절한 적도 있다.


건강보험의 유무가 평소 건강관리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국에서 내시경검사를 받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니다. 그러나 주로 편안하게 수면내시경을 하는 미국에서는 다르다.


미국에서 건강보험 없이 내시경검사를 받으면 대체로 1300달러(약 123만 원)가 들어간다. 건강보험이 있다면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300달러(약 28만 원) 정도면 된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건강보험이 없으면 내시경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가 없다.


A 씨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으로는 한국 건강보험제도가 미국보다 훨씬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요즘 한국에서도 건강보험 재정에 적신호가 켜지긴 했다. 하지만 미국에 비하면 여전히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다.


미국에 특파원으로 1년 넘게 있으면서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잘사는 선진국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되며, 전반적으로 사회가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보다 나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다.


건강보험제도뿐만 아니라 전화, 케이블TV, 인터넷, 가스 등 생활 관련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화 한 통만 걸면 정확히 시간을 맞춰 사람이 도착하는 장면을 이곳 미국에서는 상상하기가 힘들다. 미국에서는 담당자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 사이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하루 종일 집에서 기다렸는데 오후 7시가 넘어서 도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금융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물론 미국은 금융산업 경쟁력에서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한국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앞서 있다. 그런데 인터넷뱅킹에 있어서는 한국이 훨씬 앞선다.


건강보험, 교육제도, 공공서비스를 사회적 인프라라고 한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사회?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투자를 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한국이 앞서가는 분야를 발견할 때마다 새삼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흐뭇하다. 이런 분야가 더 많아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요즘 문득 스치는 생각이다.



의료보험만 봐도 오히려 한국이 선진국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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