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g Killin' Time BBQ -

남부 전통을 맛본 아주 근사한 주말을 보냈다.  해마다 이때쯤 메이저와 마가렛 칵스가 금요일 오후에 밤새워 통돼지를 구운후 토요일에 친구들을 부른다.  낙엽 아름다운 그들의 농장에서 한해를 보내는 감사와 우정을 나누는 풍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메이저는 흑인이고 마가렛은 백인인데도 두사람이 참 닮았다.  편안하고 안은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은 숲속의 아름다운 사람으로 겸허하게 자연과 어울려서 산다.

칵스농장은 몽고메리에서 남동쪽으로 한 60마일 떨어진 Smuteye 라는 아주 작은 시골에 있다.  마을 대장간이 만남의 장소였던 예전, 겨울에 남자들이 불가에 모여 앉아 밀조주를 마시며 놀곤했다.  눈 (eye) 만 빼 놓고 연기에 검게 거슬린 (smut) 얼굴들로 집에 가면 아내들이 대장간을 Smuteye 라 불렀는데, 아예 마을 이름이 된곳이다.

메이저의 조상이 영국과의 두번째 독립전쟁이라 불리는 ‘1812년 전쟁’ 에 참여한 보상으로 1837년에 연방정부로 부터 얻은 땅이다.  그후 칵스집안 대대로 목화와 산림농사를 지어 앨라바마 전통농장 등록부에도 기록되어 있다.

한 200 에이커의 땅에 연륜의 이끼가 듬뿍 낀 수백년 묵은 삼목이나 떡갈나무 가득 차 있다.  오솔길 사이로 낙엽을 밟고 걷다 보면 깊은 산속에 들어 온 착각도 든다.  메이저와 마가렛이 지난 20년 예전의 건물들을 개조하고 현대식 편의를 보태느라 많은 정열을 쏟았다.  이들이 복구해서 보전한 옛 시설물들이 숲속 곳곳에서 정겹게 한 세기전의 흔적을 보여준다.

통돼지 바베큐는 오래전에 냉장고가 없던 시절, 한국서 김장해서 땅에 묻었듯이 겨울을 나기 위한 고기 저장법이다.  날씨가 좀 쌀쌀해지면 돼지를 잡아서 약한 불로 오랫동안 은근히 구워서 저장한 습관이 남부에 있었다.

마가렛이 남편의 생일날 즈음해서 통돼지를 구은후 원근에 사는 친구들을 초대한것이 벌써 17년째, 이제는 연례행사다.  찿아오는 친구들이 한가지씩 음식을 가져와 보태지만, 단연 주인공은 통돼지이다.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라고, 살면서 만난 인연 덕에 이렇게 색다른 남부문화를 즐긴다.  예전에 마가렛이 공군에 근무할때 남편과 일 한적이 있고 이 부부도 연극을 좋아해서 극장에서 늘상 만나다 자연히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해마다 원근에서 찿아 오는 한 백오십명이 넘는 백인과 흑인 친구들 속에 동양인인 우리 부부도 낀다.  이곳에서는 상대의 피부색이나 지위, 신분에 관심없다.  그저 낯익은 친구와는 해후하고 낯선 사람과는 천연덕 스럽게 사귄다.  우리가 스폰서하는 일본 공군가족들도 함께 가서 아름다운 남부의 문화를 경험했다.  이 농장의 바베큐파티는 각별한 명성을 쌓아서 캘리포니아에서 일부러 찿아 오는 친구도 있다.

서스럼없이 닥아 온 우아한 말들에게 땅콩과 사과를 주며 아이들처럼 좋아하다가 야외에 설치된 80 갤런의 큰 무쇠솥에 장작불을 지펴서 만든 마가렛 특유의 칠리를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밤새 구워진 통돼지의 입장을 기다렸다.  트랙터 뒤에 실려서 양쪽에 둘러리를 세우고 신부처럼 당당하게 입장하는 돼지가 웬지 초연해 보였다.

이어서 돼지머리를 잡은 메이저와 마가렛이 앞에 앉고 참석한 모두가 웅장한 떡갈나무 앞에 모여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관습이 있다.  슬프게도 작년 여름에 이 바베큐의 상징이었던 300년이 넘은 떡갈나무가 죽었다.  애처롭지만 잘라 버리기에는 오랜 세월, 아름다웠던 추억이 응겨져 있어 약간의 둥치로 버틴다.

한잔의 포도주보다는 나무 사이로 비친 햇살에 떨던 단풍들과  타오르는 모닥불의 정취에 취했다.  자연의 풍성한 배경에, 풍성한 음식에, 더욱 풍성한 좋은 친구들과 훈훈한 사람살이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칵스농장의 아름다운 남부인심에 감사했다.

남의 나라에 이민왔고 이사 많이 다닌 나한테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땅에 뿌리 깊숙히 내리고 사는 칵스네 같은 사람들 보면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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