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해도 내 귀국선물 보따리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될 품목중의 하나가 바로 C표 인스턴트 가루 커피였었다.

화장품이라던지 양주라던지하는 이런저런 선물중에서도 이 C커피는 매우 중요 품목이었는데 왜냐면 친지나 형제들이 제일 좋아하고 고마워하며 반기는 선물이 바로 이 C표 커피였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 살았을 때도 커피는 미제인 C표를 제일로 쳐주었었다.

여러종류의 한국산 커피가 있었지만 USA란 상표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커피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인스턴트 커피는 당연히 C표가 최고였었다.

C표 커피는 미국에서도 값이 만만치 않아 한 병에 한국돈으로 2만원 가까히 되었었는데 나중엔 아예 귀국선물용으로 비닐봉지 커피가 따로 나와서 더욱 간편하던 기억이 난다.

좀 가까운 사람에겐 두 봉지 씩, 그외엔 한 봉지만 갖다 안겨도 충분히 인사가 되었기 때문에 가볍고 부피도 별로 크지 않은 이 봉지 커피가 내겐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전부터인가.

커피를 받아드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그리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별로 고맙지도 않지만 주니까 그냥 어쩔수 없이 받는다는 심드렁함이 그들의 얼굴에 숨길 수 없이 나타나 있었으니까.

알고 보니까 바로 일회용 커피 때문이었다.

한동안은 즉석에서 갈은 원두커피를 커피메이커에 바로 내려서 마시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가 유행하기도 했었는데 한국사람한테는 역시 진하고 걸쭉한 ' 다방 커피 ' 가 제일인 걸 깨닫고는 너도나도 다시 인스턴트 커피로 돌아갔단다.

그런데 이 다방커피를 타려면 커피,설탕, 크림을 일일이 차례대로 넣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절차가 귀찮은 사람들을 겨냥한 일회용 커피가 한국에서 크게 히트를 쳤다는 것이다.

한국엔 하루라도 커피를 안마시면 입에 가시가 돋을 정도로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은데 털어넣고 물만 부으면 되는 이 일회용 커피가 마니어를 생산할 정도가 되었단다.

집에 쌀은 없어도 이 일회용 커피는 떨어지지 않게 쟁여놓고 사는 사람이 한국에는 부지기수란다. 그러니 설탕 크림을 따로 떠서 넣어야만 하는 이 C표 커피가 더 이상 한국에서 환대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C표 봉지커피가 귀국선물로 인기가 없어지는 것과 동시에 한국마켓이나 귀국선물센타에서 박스로 재여져 있던 C표 커피도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바로 일회용 커피였는데 처음엔 두어가지 종류에 그치던 것이 지금은 모카를 비롯해서 녹차가 가미된 것 까지 얼마나 종류가 다양해 졌는지 모른다.

가격 또한 얼마나 싼지 어떤땐 20포짜리 박스 하나에 99전에 세일 할 때도 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이면 한 달이내로 미국으로 건너온다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요즘은 여기서도 너도나도 이 일회용 커피인 것 같다. 영업장엘 가나 집엘 가나 나오는 커피가 모두 다 일회용이다. 옛날에는 커피를 타는 집주인의 솜씨에 따라서 독하기도 하고 달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 누구집에 가도 커피맛이 다 똑같다.

지금은 나도 일회용 커피 마니아가 되었지만 처음에 나는 이 일회용 커피를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었다.

원두커피를 내리는 일이야 귀찮고 복잡해서 그렇다치고 비록 인스턴트 커피일지언정 커피와 설탕, 그리고 프림을 골고루 분배해 넣어야 맛이 제대로 나거늘 뜨거운 물 푹 부어 휘익 한번 저은 커피는 절대 제대로 된 커피가 아니라는 게 내 지론이었다.

커피마시는 일도 일종의 문화이니 차 마시는 것처럼 격식까지는 못차리더라도 좀 정성들이고 신경써서 탄 커피를 마시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미국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친구가 바로 일회용 커피이다.

일회용 커피 때문에 우리집 커피메이커는 부엌 찬장 깊숙한 곳으로 치워진 지 오래되었고 요즘은 아예 직장에도 한 박스씩 갖다 놓고는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고 있다.

업무시간에 잠깐 틈을 내 한 잔씩 타 마시는 일회용 커피는 지루한 업무시간에 활력소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번 글에 쓴 '캐빈'이라는 베트남인 친구는 나 때문에 일회용 커피 애호가가 되었는데 일회용 커피를 사러 한국 마켓에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들린다고 한다.

교포들 사이에는 개인의 커피 취향을 시민권자 커피, 영주권자 커피, 불법체류자 커피로 구분지어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블랙 커피는 시민권자 커피, 설탕과 크림이 다 들어간 건 영주권자 커피이며 불법체류자 커피는 영주권자 커피보다 설탕과 크림이 더 듬뿍 들어 간 죽같이 걸쭉한 커피란다.

시민권자는 아무래도 미국에 오래 살았으니까 미국인들같이 블랙커피를 마시고 미국생활에 덜 익숙한 영주권자와 불법체류자 설탕 크림을 듬뿍 탄 커피를 마신다는 요지에서 나온 유머이다.

그런데 9.11테러 이후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부쩍 심해진 요즘은 불법체류자의 커피취향이 블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시민권자는 설탕, 크림 다 넣고는 한가하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셔도 되지만 불체자는 이것저것 넣을새 없이 얼른 한 잔 마신후 내빼야 하기 때문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일회용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무어라 부를까.

휴일 오전, 집안 청소를 하는 틈사이 일회용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시며 혼자 웃어 본다.
이민 17년의 주부가 쓴 미국 생활 이야기가 http://kyesook.com 에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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