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한국에서 자라던 시절, 유행하던 통기타 노래들 보다는 고전음악을 더 좋아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돌체나 르네상스의 푹신한 의자에 내 이름표를 붙여놓고 우리집 안방보다 더 편하게 쉬었다.  음악회 입장권 구한 날은 복권 당첨된 것처럼 좋아한 철부지였다.

한국 떠난후, 한국노래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이 별로였던 것이나 지금 노래방 문화에 어색한것도 다 이 성장기의 버릇탓인것 같다.  아름다운 애창곡들이 많지만 웬지 돌아서면 대충 잊어 버리곤 가슴에 담아 지지 않았다.    

가끔씩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 60-70년대 노래를 듣는것 보고 어쩌면 나 보다 더 늙은이처럼 옛 노래를 좋아하는지 신기했다.  나하고는 달리 친정 식구들은 미국생활 수 십년 했어도 운전하며 여전히 한국노래를 고집한다.

마돈나의 노래를 좋아하던 남편은 케니지로 옮기더니 이제는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를 좋아한다.  유럽에 살때 켈틱노래에 매료된 나는 틈나는대로 켈틱 노래를 듣거나 NPR을 주로 듣는다.  어쩌다 좋아하는 노래라고 소개해도 내가 5분을 버티지 못하니 딸들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그래서 그녀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몇년전 우연한 기회에 장사익씨의 “한오백년” 노래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그의 민요풍 노래가 불러 왔다.  절제된 감정을 애절하게 쏟아내는 그의 고음이 내 속에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던 한국인의 영혼을 깨운, 특이한 경험이었다.  

작년여름에 한국 갔을때, 교보문고에서 장사익씨의 시디를 2개 찾았다.  미국에 오래 산 옛친구들에게 그의 색다른 노래를 소개하고 나도 한동안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장사익씨가 미국공연을 했다.  장사익씨댁을 방문한 적이 있는 뉴욕의 선배가 그의 공연 소식을 알려주었을때는 뉴욕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기쁘게도 내가 장사익씨의 노래를 듣는것을 기억한 큰딸이 워싱톤디시의 공연후에 그의 시디를 모두 사서 보내 주었다.

YouTube 에 들어가서 그의 노래하는 모습을 봤다.  수수한 한복차림과 깊게 패인 주름의 따스한 인상은 편안하고 정겨운 고향사람이었다.  그리고 사투리가 구수한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에는 서민의 애환이 배여 있었다.  

나에게 희미한 고향이 장사익씨의 목소리에 감겨서 남부의 축축한 스페니쉬모스가 되어 가까이 왔다.  이어서  가슴 아려운 사람들과의 추억들이 하나 둘 나를 찾아 왔다.  신기루처럼 만질 수 없지만 푸근한 느낌 주었다.  사람이 그리워서 시골장에 멈추었다 숨 죽이고 북소리를 따라 찾아간 고향에는 할머니의 숨결이 있었다.  

해나 계절이 바뀐들 변함없는 세상에서 어리석게 꿈속에 사는 지도 모르겠고, 갈 길을 아는 노인이나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같은 착각도 들었다.  민들레꽃 찔레꽃  사이로 소쩍새가 울던 고향에 살던 옛 친지들이 그리웠고 우리의 삶은 눈물처럼 따뜻한 희망이라는 그의 파도도 많이 탓다.  

아무튼 장사익씨의 노래는 올 여름 뜨거운 남부 날씨에 참 시원한 고향 바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노래를 한동안 듣고나면 심신이 지쳤다.  그러나 곧 고국과 나 자신과의 동화를 느끼며 평화로움을 찾았다.  오늘은 들을 수록 고향땅의 정과 한을 찾아 주는 노래를 부르는 장사익씨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쓰고 싶다는 충동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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