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중학교에 들어가자, 자신이 틴에이저(teenager)가 되었다는 의식이 강해지면서 전화통을 붙드는 시간이 길어졌었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던 터이라 딸이 전화기를 쓰면 우리 부부는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제 우리 아들이 틴에이저가 되면서 그는 전화기보다 머리 스타일에 신경을 써오고 있다.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라도 하려고 하면 질겁하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팔로 가리며 저지하려고 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머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아들녀석이 얼마 전에는 자신의 머리를 조금 잘라달라고 부탁해 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바쁘게 작업을 하던 중이라 나는 아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다가 생각해 보니 자신의 가장 귀하게 여기는 머리를 아빠에게 맡긴다는 것은 아빠에 대한 대단한 신뢰라고 생각하고, 부자지간에 좋은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을 바꿔 욕조에 모든 것을 벗고 들어앉으라고 했더니 팬티는 한사코 벗으려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큰 비닐봉지로 앞을 가리우게 하고서야 옷을 벗길 수 있었다.  아들녀석이 하도 아끼는 머리라 이전보다는 더욱 신경이 쓰였다.  정성을 다하고, 실력을 다하여 조심스럽게 아들의 머리를 잘랐다.  나는 어린 시절로 잠시 돌아갔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이른바 '바리깡'을 가지고 우리 형제들의 머리를 잘라주셨다.  머리를 자르는 날은 곤욕을 치루는 날이었다.  당시 바리깡은 품질이 좋지 않아 이가 나가 머리카락이 탱기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그리고 당시에는 위생시설이 잘 되지 않아서인지 기계독이 왜 그리 유행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집안에서 머리를 깎는 날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전쟁이 한바탕 일어났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 대신 이발소에 가서 머리 깎기를 원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좋은 세상이 왔나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머리를 짤라 달라고 하니 아들의 머리를 잡은 나는 정말 흐뭇했다.  사람이 70년을 살 경우 사람의 머리카락은 153km을 자란다고 하니 이렇게 긴 머리카락에서 0.5 센티미터 정도 잘랐으니 아들의 머리를 위한 나의 공헌도는 너무 미미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태도는 진지했다.  그리고 즐거웠다.  아들이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자신의 머리를 아빠에게 맡겼다는 것이고,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있다는 아빠 마음의 흐뭇함이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아들도 만족한 미소를 보냈다.  부자지간에만이 느낄 수 있는 교감이 흘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다음 날 완전히 뒤바꿨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자기를 미용실에 데려가 달라고 하였다.  이유를 물었더니 머리 좌우가 서로 길이가 달라서 균형이 깨어졌다는 것이다.  아침에 무스를 바르고 머리를 송곳처럼 세우다보니 길이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불편했던 모양이다.  아들을 데리고 미용실에 갔다.  어제 내가 이 녀석의 머리를 잘라주었는데 만족하지 못해서 데려왔다고 하였다.  미용사는 날렵한 손놀림으로 아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나갔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아들의 두상은 더욱 빛나가고 있었다.  거울에 비취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어두웠던 아들의 얼굴도 점점 환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갔다.  아들은 더 이상 나에게 자신의 머리를 맡기지 않을 것이며,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아버지 손으로 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미용사의 손놀림이 끝이 나자 대 만족을 하면서 일어나 고맙다고 인사를 주고받으며 12불을 건네주는 모습에서 부심(父心)보다 물심(物心)에 더 만족해 하는 아들을 보면서 나는 점점 외계인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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