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태아가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10달을 엄마의 뱃속에서 기다려야 한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한다.  알찬 알곡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봄에 뿌려진 씨앗은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만 한다.  하루 하루가 기다림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중요한 전화를 기다린다.  보낸 편지 답장을 매일 기다린다.  회사원은 하루 종일 퇴근 시간이 기다려진다.  부모는 밤이 늦어지면 귀가할 자녀를 기다린다.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는 아들이 제대하기를 기다린다.  새댁은 아기의 소식을 기다린다.  이러고 보면 기다림이 없이는 인생의 줄은 끊어지고 만다.  

그러나 기다림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기대와 소망이다.  기대는 막연한 기다림이다.  반면에 소망은 약속된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의 많은 기다림은 기대 혹은 단순히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 중에 하나인 소망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이것은 약속된 기다림이다.  

신앙의 사람들은 기다리는데 이력이 난 사람들이다.  노아 할아버지는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짓는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은 어떤가?  75세에 후사의 약속을 받지만 아들을 두 팔에 안아보기 위해서는 25년을 기다렸다.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서 17세에 노예로 팔려가 13년이 지나서야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루어진다.  다윗은 15세에 사무엘로 부터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을 받는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15년이나 기다린 것이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이방선교를 위하여 30세에 그의 택한 그릇으로 부름을 받은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공식적인 사역자로 부름을 받기 까지는 10여년을 기다려야 했다.  

노아, 아브라함, 요셉, 다윗, 바울과 같은 신앙의 사람들은 단순히 인간의 기대를 가지고 기다려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받은 약속을 얻기까지 믿음이 약하여 그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소망 중에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고난이 많았다.  주변의 사람들이 비웃었고, 그들의 상황은 점점 나아지기 보다는 더욱 험난 했다.  받은 약속 때문에 더 큰 고난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이루어지고 말았다.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인내한다.

슐로모 브레즈니츠라는 심리학자가 4개조의 병사들에게 20km를 행군하게 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조사했다. 1조에게는 출발시 행군거리를 예고하고 5Km마다 남은 거리를 알려 주었다.   2조에게는 단지 "지금부터 먼 거리를 행군한다."라고만 알렸다.  3조에게는 "15km를 행군한다"라고 말했다가 14km지점에서 20km행군으로 변경했다.  반면 4조에게는 "25km로 행군한다"고 말한 후 14km지점에서 "20km로 단축한다"고 발표하였다.  

조사결과, '20km행군'이라는 정확한 거리와 중간에 남은 거리를 알고 행군한 1조가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았다.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은 행군거리를 전혀 알지 못한 2조였다.  결국 달려가야 할 목표가 분명한 사람! 그 사람들이 인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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