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중간에 휴게소에 들른다. 화장실도 가고, 스트레칭도 하고, 뭘 먹을까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골라 먹는 재미도 있었다. 어떤 때는 목적지보다 휴게소에서 먹는 호두과자나 핫바 같은 게 더 기억에 남기도 했다.
반면 내가 기억하는 예전 기차여행은 조금 달랐다. 정차역에 도착해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고, 먹을 것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기차여행에서 먹었던 것이라고 기억나는 건 중간역에 도착하자마자 후다닥 내려 우동 한 그릇을 얼른 먹고 다시 올라탔던 것 정도다.
그 우동이라고 해봐야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국물에 파 몇 조각, 유부 조금, 고춧가루가 전부였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것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지금 한국의 기차역이나 휴게소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2002년쯤 미국 텍사스에서 공부할 때였다.
학교 사정으로 기숙사를 약 10일 동안 비워줘야 하는 일이 생겼다. 지금 같으면 호텔이라도 알아보겠지만 당시 나는 말 그대로 가난한 유학생이었다. 기숙사에서 나오라고 하면 갈 곳이 없었다. 차도 없었고 운전면허증도 없었다.
“10일 동안 도대체 어디 가 있지?”
고민하다가 Austin에 한국에서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그래, 거기 가서 며칠 지내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어떻게 가지?
차도 없고 면허증도 없으니 렌터카도 불가능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다 달라스 다운타운에서 Austin까지 가는 Greyhound라는 장거리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2003년 미국 Greyhound MCI MC-12. 사진: Ildar Sagdejev (Specious)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한국의 고속버스 같은 건가 보다 싶었다.
달라스에서 Austin까지 약 4시간.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아갔는데 내 자리는 거의 맨 뒤쪽이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으려다 바로 뒤에 문 하나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뭔가 했다.
맙소사. 화장실이었다.
고속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다고?
한국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화장실은 휴게소에 가서 이용하는 게 너무 당연했다. 그런데 이 버스는 휴게소가 아니라 화장실을 아예 싣고 다니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내 옆자리에는 체격이 아주 큰 남성이 앉았다. 좌석은 좁고 옆은 꽉 차 있고, 뒤에는 화장실이 있고…. 출발하기도 전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한 뒤부터는 사람들이 한 명씩 뒤로 왔다.
화장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또 열렸다 닫혔다.
내가 화장실 바로 앞 좌석에 앉아 있으니 누가 화장실을 이용하러 올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지금은 20년도 훨씬 지난 일이라 냄새가 어땠는지, 바닥 상태가 정확히 어땠는지까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화장실 문 바로 앞에서 몇 시간을 갔던 그 불편함만큼은 아직도 기억난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날 중간에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 내려 쉬었던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잠깐 서서 손님 몇 명이 내리고 또 다른 승객이 탔던 장면은 희미하게 기억난다. 하지만 버스에 탄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화장실에 가고, 음식을 사 먹고, 다시 정해진 시간에 버스로 돌아오는 그런 ‘한국식 휴게소’에 들렀던 기억은 없다.
그래서 당시 나는 혼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그래서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구나.”
물론 지금 확인해보니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Greyhound는 현재도 장거리 운행 중 휴식 정차를 한다고 안내하고 있고, 동시에 버스 안에도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휴식 정차는 고속도로 휴게 공간이나 트럭스톱, 서비스센터, Greyhound 정류장 등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국에 휴게소가 없어서 버스에 화장실을 만든 것은 아니다. 실제로 텍사스 I-35에도 Austin과 Waco 사이를 비롯해 공공 휴게 공간이 있다. 다만 내가 탔던 그날의 노선에서는 한국 고속버스 여행처럼 휴게소에 내려 한참 쉬었다 가는 경험이 없었고, 그래서 내 눈에는 버스 안 화장실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한국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조금만 참아. 휴게소 가면 돼.”였는데, 미국에서 처음 탄 장거리버스는 “급하면 뒤로 가. 화장실이 버스 안에 있어.”였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나는 그 한 번의 경험 이후 Greyhound를 다시 이용하지 않았다. 얼마 뒤 운전면허증도 땄고 차도 생겼으니 굳이 탈 이유도 없어졌다.
그리고 지금 다시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솔직히 별로 타고 싶지는 않다.
특히 선택할 수 있다면 화장실 바로 앞자리는 절대로 피하고 싶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 방식이 더 좋다. 버스 안의 좁은 공간에 화장실을 두는 것보다 몇 시간에 한 번씩 제대로 된 휴게 공간에 내려 화장실도 가고, 걸어 다니며 몸도 풀고, 커피 한 잔이나 간식이라도 사 먹는 것이 여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훨씬 편하다.
물론 미국은 땅이 워낙 넓고 운행 거리도 길어서 한국과 똑같이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장거리 이동 중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버스 안 화장실은 분명 필요한 시설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에게 Greyhound를 떠올리라고 하면 버스도, 창밖 풍경도, Austin도 아니다.
내 자리 바로 뒤에 있던 그 화장실 문부터 생각난다.
첫 그레이하운드 여행에서 자리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골랐다.

최근 Greyhound Montréal–New York 탑승기를 소개한 기사에 실린 사진. 사진: Sarah Belle Lin / Insider - 원문 기사 보기